1934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1940년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42년 같은 대학 대학원 경제학과를 수료하였다. 1945년 10월연희대학교 상학원(商學院) 교수가 되었고, 1946년 9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50년 1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주로 사회사상사·경제사상사·사회경제사·농촌문제를 강의하였다.
이 시기에 많은 책을 냈을 뿐 아니라 해박한 지식으로 명강의를 하였다. 특히 ‘민족주의의 전개과정’에 대한 열강은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 1960년 4·19혁명의 이론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59년 한국사회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4·19혁명 뒤에는 상과대학 교수 겸 학장으로 전보되었다. 196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6년 1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장을 겸하였으며, 1966년 11월 서울대학교 총장에 임명되었다.
서울대학교 총장 재직 때에는 교양과정부를 신설하여 교양교육을 대폭 강화하였고, 연구교수 제도를 신설하여 교수들의 연구 여건을 제도적으로 조성하고 지원하였으며, 서울대학교 학술연구재단을 설립하여 교수들의 학문 연구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였다.
또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당시 1억원) 모금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이를 달성하였으며, 재일동포 유학생들의 기숙사인 왕룡사(王龍舍)와 우수 학생들의 기숙사인 정영사(正英舍)를 설립하여 서울대학교에 기숙사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서울대학교를 종합대학교로서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서울대학교 총동창회를 처음으로 조직하였다. 또한 ‘서울대학교 종합화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관악산 기슭에 부지를 마련하였으며,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위한 건설본부와 기획위원회를 설치, 서울대학교의 명실상부한 종합화와 관악캠퍼스로의 이전 기초를 만들었다.
한편 서울대학교 총장 재직 때는 획기적 사업들을 실현하는 격무중에도 항상 집무실 책상 위에 연구서적을 쌓아놓고 연구와 학문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1968년부터는 하기방학 때마다 전국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학부모 및 동창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1970년 7월 하기방학 때 제3차 학부모 및 순회간담회 도중 그 동안 쌓인 과로로 졸도, 5년간의 투병 끝에 사망했다. 그간의 공적으로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근세사회사상사≫(1949), ≪민족주의의 전개과정≫(1958), ≪경제학사≫(1959), ≪막스 웨버 연구≫(1966) 등이 있으며, 그 밖의 논문들을 포함한 ≪최문환전집≫(전3권, 1976)이 사후에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