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한성부우윤,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37년 지평·사간원헌납을 역임하면서 당시의 권간 김안로(金安老)를 제거하고 그 일당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이어 응교·전한·사인(舍人) 등을 거쳐 1539년 부제학을 지내고, 이듬해 대사헌·대사간 등 삼사의 장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 뒤 한성부우윤·형조참판을 거쳐 1541년 다시 대사헌이 되었고, 이듬해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43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1545년(인종 1) 인종이 죽었을 때 수릉관(守陵官)에 임명되자 대신에게 찾아가 수척한 몸으로 3년상을 견디어낼 수 없다고 정강이뼈까지 내보이며 사정하여 교체되었는데, 이 일로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나 백인걸(白仁傑)의 변호로 무사하였다.
이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이기(李芑)의 족질로서 대윤(大尹) 일당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그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수산군(隨山君)에 봉하여졌으며 가선대부에 올랐다.
그 뒤 이조판서가 되어서는 친족들을 대거 등용하고 뇌물을 좋아하여 청탁이 공공연히 행하여졌으나 당시 이기가 두려워서 어느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종실록(仁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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