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 출생. 최병옥(崔秉玉)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기류[桐生]고등공업학교 방직과를 나온 뒤 60여 년간 우리나라 방직공업 제일선에서 공장건설·제품생산·기술개발 등 모든 분야에서 선구자 구실을 하였다.
광복 전에는 20여 년간 만주 복(福)방직·대일본방직·경성방직·목포직물·조일방직·조양방직·강화방직·고곡방직·선일견직·공화연사 등 16개 방직계통회사의 공장을 건설하였다. 광복 후 미군정의 상공부 초대 방직과장을 거쳐 국내 최대규모인 부산의 주식회사조선방직 사장으로 취임, 2개월 만에 모든 공장을 정상으로 가동시켜 흑자경영으로 전환시켰다.
이로 인해 조선방직의 전 직원은 김구(金九)로부터 ‘2천만 동포에게 옷을 입힌 공’이라는 내용의 표창장을 받았으며, 미군정청으로부터 막대한 공로금도 받았다. 그 뒤 대구방직공장, 영등포의 고려방직공장도 단시일내에 복구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안양의 주식회사금성방직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