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옥(伯玉). 호는 낙남(洛南). 증좌승지 최치운(崔致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좌참찬 최심(崔深)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최현(崔晛)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창원부사 복일(復一)의 딸이다.
재예가 숙성하여 명망이 높았다. 1628년(인조 6) 제천(堤川)에 귀양가 있던 유효립(柳孝立)이 역모하고 인성군(仁城君: 선조의 7남)도 관여하고 있다고 고변하였다. 그 공으로 영사공신(寧社功臣) 3등에 책록되고 완해군(完海君)에 봉하여졌고, 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를 초수받았다.
뒤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하사받은 전토와 노비를 반환하였다. 관이 청송부사에 이르러 53세로 죽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