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모 ()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최성모 전후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최성모 전후면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출옥 후 만주에서 민중교화사업과 전도사업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한 목사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4년(고종 11)
사망 연도
1937년
출생지
서울
관련 사건
3·1운동(기미독립운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출옥 후 만주에서 민중교화사업과 전도사업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한 목사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서울 출신. 서울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북감리교 목사가 되어 해주 남본정(南本町) 교회에서 교역생활을 하였다.

1919년 2월 당시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로 있던 박희도(朴熙道)로부터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전하여 듣고 서울에서 이필주(李弼柱)의 안내로 이승훈(李昇薰)·오화영(吳華英)·이갑성(李甲成) 등을 만나 기독교 측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하고, 3월 1일 태화관(泰華館)의 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재판과정에서 재판장이 박희도로부터 독립선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나는 권유를 받고 참여한 것이 아니라, 박희도로부터 독립운동의 말을 듣고 기뻐서 자진하여 참가하였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출옥한 뒤에 만주로 망명, 봉천성(奉天省)을 중심으로 민중교화사업과 전도사업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