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한 가문출신으로 글을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의종 때 금군(禁軍)의 대정(隊正)이 되었는데, 1167년(의종 21) 왕이 연등(燃燈)을 위해 봉은사(奉恩寺)에 행차하였다가 밤에 환궁할 때 승선(承宣) 김돈중(金敦中)이 탄 말이 날뛰는 바람에 기사(騎士)의 화살이 왕의 가마 옆에 떨어진 일이 발생했다. 최세보가 왕의 곁에 있었다 하여 혐의를 받고 남해로 귀양갔다가 1170년에 정중부(鄭仲夫) 등의 쿠데타로 무신들이 득세하자 복직되었다.
벼슬이 올라 1181년(명종 11)에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가 되었고, 1184년에 문하시랑평장사 판병부사 상장군(門下侍郎平章事判兵部事上將軍)이 되었다.
1186년에 동수국사(同修國史)가 되었는데, 그 때 어떤 사람이 중방(重房)에 참소하기를, “지금 수국사 문극겸(文克謙)이 의종이 살해된 사실을 그대로 쓰고 있으니 무관에게 이 직을 겸하게 하여 사실대로 기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문극겸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왕에게 알렸으나 무신들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웠다.
우려한 것과 같이 최세보가 동수국사(同修國史)에 임명되자 마음대로 사실을 고쳐 역사를 꾸밈으로써 『의종실록』에 빠진 것이 있고 허위사실이 많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유관(儒官)으로 상장군이 된 것은 문극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무관으로서 동수국사가 된 것은 최세보로부터 시작되었다. 1188년에는 평장사(平章事)로서 왕을 대신하여 하체(夏禘)를 주관하였다. 1189년 판이부사(判吏部事)가 되어 뇌물을 많이 받았으며, 이듬해 특진 수태사(特進 守大師)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