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주(茂朱). 자는 태로(台老).
영조가 세제로 책봉될 때와 효장세자(孝章世子) 및 장헌세자(莊獻世子)가 책봉될 때 이들을 극력 주청하여 성공시켰다. 50세 이전에 품계가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으며, 국가로부터 네 번이나 논밭을 하사받았다.
1738년(영조 14)에 중국사신이 관례를 무시하고 칙서의 내용을 혼자서만 알고 비밀로 하자 조정에서 이를 걱정하였는데, 그가 기지를 발휘하여 그 내용을 밝혀 칭송을 들었고, 영조에 의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이 해 연행사(燕行使)로 청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성품이 민첩하고 성실하였으며, 죽었을 때 집안에 한 섬의 쌀도 없었을 만큼 청빈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