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옹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세자궁령, 부지밀직사사 문한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기(夔)
  • 대화(大和)
인물/전통 인물
  • 본관동주(東州, 지금의 강원도 철원)
  • 사망 연도1292년(충렬왕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지밀직사사 문한학사(副知密直司事文翰學士)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나만수 (인하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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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세자궁령, 부지밀직사사 문한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주(東州: 지금의 강원도 철원). 초명은 최기(崔夔), 자는 대화(大和). 증조할아버지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최유청(崔惟淸)이고, 할아버지는 잡직서영(雜職署令) 최양(崔讓)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집안이 대대로 문학으로 알려진 명문출신으로 성품이 근후하고 말이 적었다. 젊어서 학문을 즐기어 동지 10인과 함께 10년간 독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몇 년이 못 되어 다른 사람은 모두 포기하고 갔으나 최옹은 홀로 힘써 배워서 읽지 않은 책이 없어, 당시 박학으로 일컬어졌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대관승(大官丞)을 거쳐 전리좌랑(典理佐郎)이 되었으며, 충렬왕은 태손(太孫) 때부터 맞이하여 사부(師傅)로 삼았는데 즉위함에 따라 국자사업(國子司業)을 지내며 『통감(通鑑)』을 강론하였다.

이어 국학전주(國學典酒) · 세자궁령(世子宮令)을 거쳐 1292년(충렬왕 18) 부지밀직사사 문한학사(副知密直司事文翰學士)에 올라 치사(致仕)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주석

  • 주1

    : 가계 : 『고려사』 권99, 최유청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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