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횡간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삼지(三池)
  • 운지(澐之)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00년(연산군 6)
  • 사망 연도1520년(중종 15)
  • 본관화순(和順)
  • 주요 관직횡간현감
  • 관련 사건기묘사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능하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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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횡간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운지(澐之). 호는 삼지(三池). 대대로 전의에서 살았으며, 일찍이 김정(金淨)과 같이 공부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8년(중종 13)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진출하였는데, 당시 현량과천목(賢良科薦目)에서 지조와 행실이 바르고 학식과 재행(才行)이 있다고 하였다. 횡간현감이 되어서는 정사를 바르게 펴고 송사(訟事)를 사리에 맞게 처리하니 아전들이 두려워하고 백성들이 잘 따랐다.

이에 임금이 옷감 한 벌을 내려 격려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고향에 내려갔는데, 이듬해 이신(李信)이 고사(告辭)에서 대사성 김식(金湜)이 도망중에 있을 때 “나를 받아줄 사람은 최운과 영해부사 이윤검(李允儉)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고 하여 이에 연루, 체포되어 추국을 받고 전가족이 강계로 추방되어 그 곳에서 죽었다. 죄가 풀리자 그의 아내가 유해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장사지냈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호보(號譜)』

  •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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