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앙(士仰). 아버지는 최인석(崔寅錫)이다.
1719년(숙종 45) 무과에 등제하여 의금부도사·경력(經歷) 등을 거쳐 낙안군수가 되었다.
1721년과 이듬해에 노론의 4대신인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이 사사된 신임사화가 일어나 노론계열이 원방으로 찬축(竄逐)되자 그는 노론으로 이들에게 양식을 보내는 등 여러 방면으로 돕다가 소론계열의 사헌부 관원에게 발각되어 파직되었다.
그 뒤 영조가 등극한 1725년(영조 1) 여러 노론계층의 인물이 등용됨에 따라 그도 복직되어 공조좌랑에 제수되었다. 그 뒤 재령군수로 나가 4년 동안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이어 얼마동안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벼슬을 그만두었다. 성품이 돈후(敦厚)하였으며, 특히 효성이 지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