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룡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경호부원, 북로사령부 참모부 서기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6년(고종 33)
사망 연도
1923년 7월 2일
출생지
함경북도 성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경호부원, 북로사령부 참모부 서기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북도 성진 출신. 1918년 3월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3·1운동 직후 북간도 용정(龍井)으로 망명,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경호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용정에 있는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 설립에 관여하고 교편생활을 하기도 했다.

1920년 대한국민군사령(大韓國民軍司令)인 안무(安武)의 부관으로 활동하면서, 용정에서 일본첩자를 처단한 일도 있었다. 같은 해에 북간도 지역의 대한국민회·대한의민회(大韓義民會)·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등이 연합하여 북로사령부(北路司令部)를 결성하였을 때, 그 참모부 서기를 맡아 활동하였다.

1922년 봄 함경북도 성진으로 밀파되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청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3년 7월 2일 청진형무소를 탈옥하려다 총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현대사자료』28(강덕상, 1972)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東文社書店, 1946)
집필자
한시준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