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성진 출신. 1918년 3월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3·1운동 직후 북간도 용정(龍井)으로 망명,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경호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용정에 있는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 설립에 관여하고 교편생활을 하기도 했다.
1920년 대한국민군사령(大韓國民軍司令)인 안무(安武)의 부관으로 활동하면서, 용정에서 일본첩자를 처단한 일도 있었다. 같은 해에 북간도 지역의 대한국민회·대한의민회(大韓義民會)·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등이 연합하여 북로사령부(北路司令部)를 결성하였을 때, 그 참모부 서기를 맡아 활동하였다.
1922년 봄 함경북도 성진으로 밀파되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청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3년 7월 2일 청진형무소를 탈옥하려다 총살당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