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명 요한. 호는 관천(冠泉). 역관(譯官) 출신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이승훈(李承薰)·이벽(李檗) 등 남인학자들과도 교유하다가 천주교서적을 얻어 보게 되어 1784년(정조 8) 겨울에 입교하였다.
성격이 온순하면서도 활동적이었기 때문에 신자들의 신망을 얻어 총회장이 되어서 20년 동안 천주교를 뿌리내리게 하는 데 공헌하였다. 초기교회에는 교리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전교에 많은 불편을 느꼈으므로 『성경직해(聖經直解)』라는 한문책을 우리말로 옮겨 신자들에게 보급하고, 권일신(權日身)·이벽·정약종(丁若鍾) 등과 함께 교회창립에 주동적 역할을 하였으며, 성직자 영입을 위하여도 앞장서서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형조에서는 일찍부터 그를 체포하고자 혈안이 되었는데, 그는 피신하여 체포를 모면하였으나 도피생활중 병을 얻어 집에 돌아왔을 때 배교자의 밀고로 잡히고 말았다.
포청에서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처음에는 배교하였으나, 국청(鞠廳)에 넘겨진 뒤로는 배교를 취소하고 호교문(護敎文)까지 지어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였으므로 4월 8일 정약종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