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 출신. 평민으로 1907년 가을 춘천 북산외면에서 안종우(安鐘雨)·송관영(宋寬永)·김양현(金養鉉) 등과 함께 봉기하였다. 부대규모는 일제측의 기록에 대략 6백 명으로 나타나 있다. 춘천·화천·양구·인제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1월에는 임당리(林塘里) 범동(犯洞)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 이 때 이인금(李寅今)을 비롯한 60여 명이 전사하고, 2명이 포로되었다. 1908년 7월 3일 학곡(鶴谷)에서 일본군 춘천수비대에 체포되어 피살당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