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봉(牛峯). 최충헌(崔忠獻)의 아들이며, 최우(崔瑀)의 동생이다.
왕족 왕항(王沆)의 딸에게 장가들어 보성백(寶城伯)에 봉하여졌고, 벼슬은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1219년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장군 최준문(崔俊文), 상장군 지윤심(池允深), 장군 유송절(柳松節), 낭장 김덕명(金德明) 등 4인이 형 최우를 물리치고 후계자로 세우려 하였으나 최우에 의하여 장인 왕항, 처남 사도(司徒) 왕종(王琮) 등과 함께 섬으로 귀양갔다가 장인과 처남은 소환되고, 최향은 홍주(洪州: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로 이배되었다.
1230년 홍주에 귀양가 있을 때 최우에게 원한을 품고 난을 일으켜 홍주부사 유문거(柳文柜), 판관 전양재(全兩才), 법조(法曹) 이종(李宗) 등을 죽이고 인근 주군(州郡)에 격문을 돌려 반란에 호응하게 하였다.
그런 한편, 창고를 열어 곡식을 자기의 군사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큰 소란을 벌이다가 병마사 채송년(蔡松年), 지병마사 왕유(王猷) 등에게 패하여 자살을 꾀하다가 실패하고 잡혀 옥사하였다. 뒤에 죄가 용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