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명 베드로. 충청남도 공주 출신. 서울 남문 밖에 살면서 어려서부터 부모의 가르침으로 입교하였는데, 동생 방제(方濟)는 김대건(金大建)·최양업(崔良業)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 유학하였으나 사제 수업 중 병사하였고, 형 수(燧)는 1866년에 절두산(切頭山)에서 순교하였으며, 큰누이는 일생 동안을 수정(守貞)하였다.
이렇듯 독실한 천주교가정에서 자라나 모방(Maubant, P.)신부의 입국 후로는 신부의 복사(服事)가 되어 그의 전교활동을 도왔으며, 1839년(헌종 5)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뒤로는 목수 일을 하여 묵주 만드는 일과 교회서적 출판을 도왔다.
베르뇌(Berneux, S .F.)주교의 입국 후에는 주로 교회서적 출판의 책임자가 되어 교회서적 보급에 큰 공적을 남겼다. 1866년 베르뇌주교가 체포되고 그 때 압수된 교회서적들이 최형이 인쇄한 것이라는 이선이(李先伊)의 밀고로 그도 체포되어, 3월 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동료 전장운(全長雲) 등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시복(諡福)되었고,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