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성안(性安), 호는 송애(松厓). 고령 출신. 최경표(崔擎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광악(崔光岳)이고, 아버지는 공조참판 최상원(崔尙遠)이며, 어머니는 성주도씨(星州都氏)로 도상회(都尙會)의 딸이다. 큰아버지 최상준(崔尙峻)에게 입양되었으며, 정종로(鄭宗魯)의 문인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고, 다음해 저작(著作)·박사 등을 거쳐 1843년 성균관전적·예조좌랑·가례도감낭청(嘉禮都監郎廳)을 지냈다.
그 뒤 사간원정언으로 있을 때에는 과거의 부조리를 엄단할 것과 시험종목에 현실성이 없는 시(詩)·부(賦) 등을 없애고 경국지문(經國之文)을 위주로 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문교진흥에 힘쓰자는 「흥학소(興學疏)」와 당시의 정책적인 시폐를 개혁하자는 「시폐소(時弊疏)」를 올렸다. 봉화현감으로 재직시에는 선정을 베풀어 많은 치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심성론(心性論)에 있어서는 심이 이미 생긴 뒤에 성이 마음에 갖추어지게 되므로 심이 성보다 앞선다는 심선성후설(心先性後說)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송애집』 4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