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황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계방참하관, 산릉도감낭청, 산청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구암부묵』, 『제자초략』 등을 저술한 문신.
이칭
  • 구암(苟菴)
  • 국보(國輔)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해주(海州)
  • 사망 연도1874년(고종 1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의금부도사|산청현감|거창부사
  • 출생 연도1782년(정조 6)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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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계방참하관, 산릉도감낭청, 산청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구암부묵』, 『제자초략』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국보(國輔), 호는 구암(苟菴). 아버지는 군수 최언헌(崔言憲)이며, 어머니는 양주조씨(楊州趙氏)로 조영소(趙榮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사서를 읽고 제가(諸家)의 주석을 변정(辨正)하였으며, 글씨에도 능하였다.

20세에 반시(泮試)에 합격하여 1823년(순조 23) 제릉참봉(齊陵參奉)에 처음 임명되고, 이어 사재봉사(司宰奉事)에 승진되었다. 1834년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거쳐 익위사시직(翊衛司侍直)이 되었다. 일직(日直) 때에 헌종이 세손으로 책봉되어 개설한 서연(書筵) 강의에 입시하여 시강하였다.

그해 11월에 헌종이 즉위하자 계방참하관(桂坊參下官)에 임명되었다. 1835년(헌종 1) 산릉도감낭청(山陵都監郎廳)이 되었으며, 이어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와 의금부도사를 역임한 뒤에 산청현감에 임명되었다. 그 뒤 면천군수가 되었으나 사직하였다.

고향에 돌아갔다가 1844년 다시 거창부사 등을 거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다. 박영원(朴永元)·조봉진(曺鳳振)·홍경모(洪敬謨)·박기수(朴祺壽)·정원용(鄭元容) 등과 어릴 적부터 두터운 교유가 있었다. 성품이 결백하고 지조가 강건하며,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로 경사에 통달하고 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만년에는 집에 국화를 심고 은일하며 시작(詩作)과 저술에 힘썼다. 저서로는 『구암부묵(苟菴副墨)』 16권, 『제자초략(諸子抄略)』 12권, 『시총(詩叢)』 6권, 『역예초록(易禮抄錄)』·『간재연보(艮齋年譜)』 등이 있다고 전하나 그 소장처를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 - 『경산집(經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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