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일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형조좌랑, 훈련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원양(元讓)
  • 시호충장(忠壯)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자호란
  • 사망 연도1644년(인조 2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의주(義州)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승희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형조좌랑, 훈련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자는 원양(元讓). 의주 출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고, 광해군 때 형조좌랑을 거쳐 훈련판관에 이르렀다.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이름이 알려진 용장으로, 1629년(인조 7) 청군(淸軍)이 침입하여 오자 의주에서 장사 장응림(張應林)과 함께 출전하였다.

통군정(統軍亭)에서 적병 수십명을 죽이고, 거짓 적진에 투항하여 당시 가도(椵島)에 주둔중인 명나라의 좌도독 모문룡(毛文龍)과 내통, 모문룡으로 하여금 적을 공격하도록 정보를 제공한 다음 적진을 탈출하여 청량산(靑梁山)에 들어가 장사를 모아 적을 방어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의 휘하에 들어가 압록강에서 적과 싸워 전공을 세우고 많은 군용품을 노획하였다.

청나라의 임금을 죽여 명나라의 위기를 구하고 원수를 갚을 계획으로 역사(力士) 차예량(車禮亮), 의주부윤 황일호(黃一皓), 절도사 임경업 등과 약속하고 등주(登州)로 건너가 진홍범(陳洪範)에게 청나라를 치자고 건의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다시 영원(寧遠)으로 가서 명장(明將) 오삼계(吳三桂)와 함께 금주(錦州)에서 청병과 싸워 여러 번 공을 세웠다. 1644년 적장 이자성(李自成)의 침입으로 연경(燕京)이 함락되고 명나라가 망하자 오삼계는 항복하고, 그는 죽은 명주(明主) 의제(義帝)의 빈소에서 10일 동안 통곡하면서 단식하다가 죽었다.

숙종 때에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의주 백마산성사(白馬山城祠, 일명 顯忠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명배신록(明陪臣錄)』

  • - 『전고대방(典故大方)』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