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윤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권두에 세계도(世系圖)도 1편, 연보 1편이 있고, 권1에 시 15수, 소(疏) 3편, 서(書) 1편, 제문 4편, 묘갈명 1편, 행장 1편, 권2에 부록으로 제현찬록(諸賢纂錄) 5편, 만사 4수, 제문·행장·묘갈명·근서추담윤공행장후(謹書秋潭尹公行狀後) 각 1편, 권3에 시장(諡狀)·신도비명·신도비비각기(神道碑碑閣記)·신도비비각상량문·문집고성문(文集告成文)·유묵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이제묘(夷齊廟)」는 주문사(奏聞使)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백이·숙제(伯夷叔齊)의 사당을 배알하고 그 의리를 높이 찬양한 시다.
소의 「사이조참판소(辭吏曹參判疏)」는 1611년(광해군 3)에 올린 사직소다. 여기서 그는 아울러 의령현에 사는 윤중호(尹仲虎)가 가산이 기울어지자 어머니는 자결하게 하고 아우를 독살했으니 그에게 큰 벌을 내려 명분을 바로잡고 인륜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한성판윤소(辭漢城判尹疏)」는 1613년 인목왕후(仁穆王后)가 유폐된 서궁(西宮)에 미육(米肉)을 헌납한 사실이 발각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자 광해군을 설득하는 내용으로 올린 것이다. 「진주목사윤공행장(晉州牧使尹公行狀)」은 종형 탁(鐸)의 행장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김면(金沔) 등과 개령·지례 등지에서 큰 공을 세우고, 진주에서 김시민(金時敏)·김천일(金千鎰)·황진(黃進) 등과 왜적을 섬멸하다가 진주성이 함락되어 최경회(崔慶會)·김천일 등과 순절한 사실들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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