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년(문무왕 16) 2월에 왕자(王子)의 신분으로 대감(大監) 급찬(級湌) 김비소(金比蘇), 대감 내말(奈末) 김천충(金天沖), 제감(第監) 대마(大麻) 박무마(朴武摩), 제감 대사(大舍) 김락수(金洛水) 등과 함께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송사(送使) 내마(奈末) 김풍나(金風那)와 김효복(金孝福)이 축자(築紫)까지 호송하였다. 같은 해 4월에 일본의 난파(難波)에 이르렀고, 8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한편 이때의 제감(第監)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제감(弟監)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마는 그 서열로 보아 대내마(大奈麻)라기 보다는 대사(大舍)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683년(신문왕 3)에는 재상(宰相)으로 있으면서 굴정현(屈井縣)에 영축사(靈鷲寺)를 창건하였다. 즉 충원은 장산국(萇山國)의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성(城)으로 돌아올 때 굴정역(掘井驛)의 동지야(桐旨野)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매로 꿩을 사냥하는 장면을 구경하였다. 매에 쫓긴 꿩이 굴정현 관청의 북쪽 우물 속에 있고,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는데 물이 마치 피빛 같았다. 꿩은 두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는데, 매도 측은히 여겼는지 잡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측은한 느낌이 있어 그 땅을 점쳐 보았더니 절을 세울 만 하다고 하였다. 충원은 서울로 돌아가 신문왕에게 아뢰어 현청(縣廳)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영축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