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 있다. 1984년 12월 31일에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백촌사상연구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김문기(金文起, 1399∼1456)의 본관은 김녕(金寧)이고, 초명은 효기(孝起)이며, 호는 백촌(白村)이다. 어릴 때부터 효행이 뛰어나 향리인 백지리를 ‘효자동’이라고 불렀다.
그는 1426년(세종 8) 문과에 급제한 이후, 병조참의·함길도관찰사·공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1456년(세조 2) 박팽년(朴彭年) 등과 단종복위를 모의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였으며, 1778년(정조 2)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을 죄를 풀어버림)되었다.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 노량진 사육신묘역에 허총(許塚: 가묘)을 봉안하였다.
비석은 1804년(순조 4)에 세운 것인데, 1846년(헌종 12)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넓은 공터에 돌길을 내고 좌우에 얕은 향나무를 심어 비각으로 향하게 하였다. 비신(碑身)의 높이 120㎝·두께 25㎝, 전체 높이 200㎝로 보호비각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