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권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7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경연주의」는 1509년(중종 4) 8월 11일까지 저자가 경연관으로 나가면서 왕에게 진주(陳奏)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임금의 수덕(修德), 외환의 방비, 인재 등용책 등, 왕도정치를 구현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계사의 「청추죄이극돈계(請追罪李克墩啓)」는 사국(史局)의 일을 누설하여 무오사화를 일으킨 장본인 이극돈(李克墩)의 추죄(追罪)를 강력히 건의한 것이다. 「청물추록유자광훈적…계(請勿追錄柳子光勳籍…啓)」와 함께 사림을 모해한 자는 훈적(勳籍)에서 삭제해 사림들의 분한 마음을 달래야 한다는 주장이다.
차자 가운데 「청복소릉차자(請復昭陵箚子)」는 「청복소릉소(請復昭陵疏)」와 함께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소릉(昭陵)을 폐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아들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었다 해서 그 어머니를 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건의하였다.
「한원일기(翰苑日記)」는 저자가 예문관에 재직할 때의 일기이고, 「당후일기(堂後日記)」는 승정원주서로 재직할 때의 일기이며, 「승선일기(承宣日記)」는 좌우도승지로 있을 때의 일기이다. 이들 일기에는 임금을 중심으로 한 대궐 안의 일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왕의 거둥, 제신(諸臣)의 계(啓)·소(疏), 임금의 비답(批答), 과거 시행 등 행정에 관계된 모든 기록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왕조실록』·『승정원일기』와 중종시대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상호 보완 관계에 있는 중요한 자료다.
「조천록」은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을 정정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 보낸 사신)로 연경(燕京)에 다녀온 기록이다. 1539년 윤7월 17일부터 그 해 12월 16일까지 서울을 떠나 임무를 마치고 연경을 떠나는 날까지의 모든 사실을 일기체로 쓴 것이다. 당시 명나라까지의 노정(路程)·경치·풍물·풍속 등을 소상하게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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