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帖) 형태의 채색필사본으로 총 52장이다. 각각의 지도는 첩으로 분책된 형태이고 첩을 펼쳤을 때 지도의 크기는 작게는 70.3×52.3㎝에서 크게는 72.8×118㎝로 일정하지 않으나 첩장(帖粧)의 크기는 35×25㎝로 동일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소장 상태는 수리된 이후의 모습으로, 지도와 첩의 표지가 따로 분리되어 펼쳐진 상태로 배접되어 있다.
충청도지도는 1872년에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1872년 군현지도』 중 충청도 부분에 해당한다. 이 지도들은 군현지도 5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청도 54곳의 고을 중 「문의현지도」가 중복되어 그려지고, 괴산(槐山), 목천(木川), 예산(禮山) 지역의 지도가 누락되었다. 「서산군산천도」에는 평신진(平薪鎭)이 함께 그려져 있다.
충청도지도는 다른 지역의 지도와 달리 지면에 도곽(圖廓)을 그린 후 위 칸에는 지도명을 써넣고 그 아래에는 지도를 그려 넣는 방식으로 체제의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지도의 구도는 대부분 읍치(邑治)를 중심으로 산과 산을 이어서 연맥식으로 표현하거나 진산(鎭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풍수지리관이 반영되었다.
「아산현지도」는 동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여 읍치로 이어지는 산맥의 흐름을 실제 지형보다 부각시키고 읍치 주변의 산세를 산도 형식으로 강조하였다. 「회덕현지도」는 진산인 계족산에서 읍치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마치 단단하고 질긴 밧줄처럼 굵고 진하게 표현되었다.
지도의 내용은 사창(社倉), 훼철된 서원(書院), 포수청(砲手廳) 등 당시 흥선대원군 정권 아래에서 새롭게 시행된 정책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읍치(邑治), 사찰, 면(面), 리(里), 동(洞), 산성, 령(領), 치(峙), 봉대(烽臺), 진(津), 포(浦), 창(倉), 장시(場市), 역(驛), 향교 등 지역에 대한 정보가 회화적 요소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충청도지도에서 주목되는 점은 산지를 표현하면서 산봉우리의 형태나 붓질의 방향이 다르게 구사되어 있는데도 한결같이 볏짚이나 억새풀, 대나무 등으로 만든 거친 필치가 드러나는 붓이 사용되었다.
충청도지도는 이전에 제작된 관찬지도와 비교하여 통일성은 결여되었지만 당시 지방사회의 실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료로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