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이른바 신식군대인 훈련대가 조직되면서 이에 편입되지 못한 중앙의 나머지 구식군대를 중심으로 같은해 5월 신설대(新設隊)가 12개대(隊)로 조직되었는데 이 중 2개대가 치중대로 편제되었다.
이때 치중대는 병졸이 800명이었으나 당분간 독립편성하지 않고 신설대 공병대(工兵隊) 8개대대에 100명씩 분속시켰다. 그러다가 신설대는 을미사변 이후 훈련대가 친위대로 개편되면서 일단 폐지되었다.
그 뒤 1900년 12월 1개중대의 치중대가 친위연대에 증설 배속되었다. 이때의 편제는 장교가 4인으로, 중대장에는 정위(正尉)가, 3인의 소대장에는 부위(副尉) 내지 참위(參尉)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하사관이 11인, 병졸 및 나팔수가 183인으로, 치중병중대는 총 198인의 장병으로 구성되었다. 그 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군대감축을 내세워 1905년 수도방어의 핵심인 친위대를 폐지함으로써 이에 부속되었던 치중병 1개중대도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