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권 150책.
세종은 정치에서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후대 정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우리 나라와 중국의 역대 사적 중에서 정치의 귀감이 될 사실을 간추려 이 책을 편찬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1441년(세종 23) 집현전대제학 정인지 등이 집현전학자들과 함께 과를 나누어 편찬하였다.
중국 주(周)나라에서부터 원나라까지의 역사와 우리 나라 기자조선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하여 1445년 150권으로 완성하였다.
그러나 내용이 워낙 방대해 쉽게 간행되지 못하고 여러 차례 교정을 거쳐 1516년(중종 11) 갑진자(甲辰字)로 간행되었다.
그러나 질(帙)이 방대한 까닭으로 그 뒤 다시 간행을 못하게 되었으며, 효종 때는 왕이 보고 싶어했으나 전질을 구해 보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현재 국내에는 규장각도서로 2종이 있다. 그러나 전질은 아니고 홍문관과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의 도장이 찍힌 권 29·30·32·107의 4책 영본(零本) 1부와, 홍문관·한산후학선제(韓山後學鮮齊) 등의 도장이 찍힌 72책의 영본 1부가 있을 뿐이다.
전자는 중종 때의 것으로 연대가 미상이고, 후자는 중종 11년 갑진자로 간행된 활자본이다. 국외에는 일본 나이카쿠문고(內閣文庫)에 150책 중 권 33·34·86이 빠진 147책이 있어 가장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한편, 필사본으로는 일본 도요문고(東洋文庫)에 84책이, 국사편찬위원회에 4책이 남아 있다.
역대 사적 중에서 국가의 흥폐(興廢), 군신의 사정(邪正), 정교(政敎)의 장부(臧否), 풍속의 오륭(汚隆), 외환(外患)·윤리 등 각 방면에 걸쳐 권징(勸懲)할만한 사실을 담고 있다.
특히, 정치의 체(體)에 도움이 될만한 것은 반드시 기록하고, 여러 사람의 주석과 선유(先儒)들의 논의를 덧붙여 정치의 대경(大經)으로 삼고자 하였다.
주된 내용은 중국 역대왕조의 흥망에 관한 것이다. 즉, 삼대(三代 : 夏·殷·周)는 문물제도가 정비된 태평성대이고, 동주(東周)의 쇠약으로 전국칠웅(戰國七雄)이 다투게 되었으며, 진(秦)은 사력(詐力)을 썼기 때문에 2대에 그쳤고, 한(漢)은 관인(寬仁)을 숭상해 오래 지탱할 수 있었지만, 말년의 쇠약으로 삼국시대를 맞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어 진(晉)·오호(五胡)·육조(六朝)·수(隋)·당(唐)·오대(五代)·송(宋)·원(元)을 거쳐 명나라가 건국되었음을 강조, 국가 흥망에 관한 것을 중시하였다.
한편, 우리 나라 역사에 관해서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 않지만, 역사의 오래됨과 그 흥폐존망을 중시해 기자조선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기술하였다. 역사가 정치의 거울이라는 유교적 역사관에 입각해 쓴 것으로 후대 정치인들에게 매우 중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