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건물.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왼쪽의 원통전과 더불어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원래 다른 곳에 세워져 있던 건물을 1828년(순조 28)에 옮겨다 세운 것이라 한다.
기단은 정면에서 볼 때 크기나 두께가 고르지 않은 장대석을 5겹 정도 포개 쌓은 형식으로 고려시대의 기단 축조 기법을 따르고 있다. 갑석은 댓돌 면보다 앞으로 약간 튀어나오게 설치한 다음, 밑면을 두번 궁굴려서 정성스럽게 가공하였다.
계단은 정면 중앙 한곳에만 가설되었는데 층급 9개 중 위에서 아래로 4단까지는 기단과 같은 시기에 만든 것이나, 그 아래 5개의 단은 후대에 첨가된 것이다. 소맷돌 갑석의 다듬기 기법을 보아도 현재의 계단이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성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주춧돌 가운데 정면의 네 기둥 주초와 우측면 제2 기둥 밑의 주초는 윗면에 2단 원형 기둥자리를 마련하고 있어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머지 주초는 자연석을 그대로 놓은 덤벙주초여서 건물을 옮겨 지을 때 새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내부 후면 중앙에는 평주열(平柱列)에 맞추어 굵기가 가는 고주 2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후불벽(後佛壁)을 친 다음 여기에 기대어 목조 불단을 가설하고 삼존불상을 안치한 뒤 지붕 모양의 천개(天蓋)를 매달아 중앙 부분을 장엄하였다. 이러한 평면 구성은 물론 불단 앞쪽 마루를 모두 예불 공간으로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서 15세기 이후 불전 건물에서 일반화된 형식이다.
창호를 정면 3칸과 좌우 측면의 앞툇간 그리고 후면 중앙간에 설치한 것도 조선 후기 불전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정면 기둥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둥은 굵기도 제각각일 뿐 아니라 휜 나무를 간단하게 다듬은 뒤 그대로 활용한 것이어서 짜임새가 좋지 않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여 재목 선택에 선풍(禪風)이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보여 주고 있다.
앞쪽 공포(栱包)는 안팎 삼출목으로 외부 제공첨차 끝의 연꽃장식이나 그 위의 봉두조각, 그리고 내부 제공첨차의 운궁형(雲宮形) 등은 19세기의 작풍으로서, 이는 1828년 이건할 당시에 새로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뒤쪽 공포는 약간 뒤에 오는 양식적 특징을 보여 1857년(철종 8)의 중수 기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