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관제를 개편하면서 궁내부를 설치하였는데, 이때 궁내부 산하에 종래의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을 새로 설치하였다.
이 기관의 장(長)으로 태학사 1인을 두고, 그 아래 학사·부학사 각 1인과 시강(侍講)·시독(侍讀) 각 2인을 두었다. 그리고 이때 개정된 관제에서는 시강원(侍講院)에서 경사(經史)의 시강 등을 맡았는데, 이에 소속된 사(師)는 의정부대신(議政府大臣)을 거친 사람이 겸하고, 그 아래 직위인 부(傅)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만약 사람이 부족하면 태학사가 이를 겸하도록 하였으며, 이사(貳師)는 이미 태학사를 거친 찬성(贊成) 중에서 추천하여 뽑았다.
또, 태학사가 궐석일 경우에는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이 이미 태학사를 지낸 사람, 현직의 학사 및 궁내부협판(宮內府協辦) 등과 협의하여 3인을 추천하고 이 중에서 국왕이 뽑도록 하였다.
이듬해 경연청을 폐지하고 그 기능을 시종원(侍從院)에 맡겼다가 같은 해 개정관제에서 경연원(經筵院)을 두어 경적(經籍)·문한(文翰)·시강·대찬(代撰) 등의 일을 맡도록 하였고, 관원으로 칙임관(勅任官)의 경(卿) 1인과 시강 1인, 주임관(奏任官)의 부시강 1인, 판임관(判任官)의 시독 4인을 두었다.
그 뒤 1897년 1월 포달(布達) 제21호로 궁내부관제를 개정, 반포하였을 때 경연원을 홍문관으로 개편하고 경을 폐하여 태학사로 개칭하였으며, 관제의 개편과 함께 태학사에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 김영수(金永壽)로 하여금 겸임시키고 칙임관 3등에 서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