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통양창은 고려시대에 현 경상남도 사천시 지역의 사천만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고려시대에 설치한 전국 13조창 중 하나이다. 진주, 합주, 고성, 남해 등과 그 속군현인 경상도 서남부 지역의 세곡을 모아 남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1척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을 두었다고 한다. 이곳에 임명된 판관에게는 20석의 녹봉이 지급되었다. 통양창은 조선 건국 후 1403년에 폐지되었다. 1760년에 가산창이 부활하면서 통양창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했다.
정의
고려시대에 현 경상남도 사천시 지역의 사천만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개설
내용
통양창의 위치는 현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와 통양리 일대로, 사천만 동쪽 해안에 해당한다. 선진리의 선진리성에 조창 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선진리 남쪽의 통양리는 그 명칭 자체가 통양창에서 기원한 것이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예전 조세를 거두던 곳인 통양창성(通洋倉城)이 사천현 읍치 남쪽 17리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통양포가 남쪽 20리 지점에 있다고 한다. 통양창성은 현재의 선진리성에, 통양포는 선진리성 남쪽의 현 통양리 지역으로 비정할 수 있다.
『고려사』에는 정종(靖宗) 때(1034~1046) 전국 각 조창에 배치할 조운선의 숫자를 정하면서, 통양창에는 1척 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哨馬船) 6척을 두었다고 한다. 통양창에 모인 세곡은 남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되었다. 통양창을 비롯한 13조창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조창을 드나드는 세곡의 보관 및 운송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했을 것이며, 13조창에는 판관(判官)이 임명되어 각 조창에서의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다. 인종 때(1122~1146년) 개정된 외관(外官)의 녹봉 규정에 따르면, 13창의 판관에게는 20석의 녹봉이 지급되었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문경호, 혜안, 2014)
-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한정훈, 혜안, 2013)
- 『한국사: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24(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4)
- 『한국사: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14(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3)
- 『조선후기 선운업사(船運業史) 연구』(최완기, 일조각, 1989)
- 「고려~조선전기 조창(漕倉)의 분포와 입지」(정요근, 『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 「고려의 조운제도와 사천 통양창」(김재명, 『한국중세사연구』 20, 한국중세사학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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