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지도 ()

인문지리
문헌
1872년 경상감영에서 삼도수군통제영을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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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72년 경상감영에서 삼도수군통제영을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 고지도.
서지적 사항

축 형태의 채색필사본으로 세로 69.2㎝, 가로 115㎝이다.

내용

「통영지도」는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 태평동 일원에 있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을 그린 지도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삼아 한산도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1604년(선조 37) 고성현 두룡포(豆龍浦)에 통제영을 옮기고, 이때부터 지명으로서 통영이 사용되었다.

1678년(숙종 4)에는 영문(營門) 주위의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다. 통영성에는 4대문(大門)과 2암문(暗門), 3포루(鋪樓)가 있었고 100여 개의 관아가 있는 큰 규모의 계획군사도시가 세워졌다. 1895년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다가 일제강점기에 세병관(洗兵館)을 제외한 많은 건물이 사라졌다.

이 지도는 1872년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사업 때 군사시설에 대한 지도를 별도로 제작한 것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1872년 군현지도』 중 경상도지도첩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축 형태로 따로 분리되어 있지만 지도의 표현 양식과 내용 등을 볼 때 1872년 군현지도 제작사업 때 만들어진 것이다.

통영성과 내부의 관아 배치 및 군항(軍港)을 중심으로 주변의 섬과 해역(海域)을 부감한 시점으로 그리고 회화적 요소를 사용하여 상세하고 정밀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지역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준다. 특히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 표현으로 보아 당시 경상우수영에 파견되었던 화원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통영의 속진에 해당하는 구소비진, 가배량진, 율포진, 장목포진, 사량진, 안골진 등을 그린 지도가 같은 화풍으로 제작되었다.

통영성 내부 공간은 북쪽 상단으로 세병관이 중심에 그려져 있고 운주당(運籌堂), 경무당, 중영(中營), 내아(內衙), 화약고 등 관아 건물들의 배치가 매우 상세하다. 포구에는 병선(兵船)이 늘어선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거북선의 모습도 보이고 있으며, 미전(米廛)이 들어선 해안가에는 범선(帆船)도 그려져 있다. 이 시기 통영이 군사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상업 활동의 요지로도 부각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통제영의 규모와 실정을 회화적 요소로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조선후기 지방지도: 경상도편』(서울대학교 규장각, 민족문화, 2005)
「1872년 군현지도의 제작과 회화적 특징: 전라도지도를 중심으로」(김성희, 명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조선후기 통제영 화원 연구」(이현주, 『석당논총』39, 2007)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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