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자안산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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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자안산성
통화 자안산성
건축
유적
중국 길림성 통화시 동창구(東昌區) 강동향 자안촌 협심둔(夾心屯)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석축 성곽.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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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길림성 통화시 동창구(東昌區) 강동향 자안촌 협심둔(夾心屯)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석축 성곽. 산성.
내용

동남으로 혼강(渾江)이 흐르고, 이 혼강에 합류되는 합니하(哈泥河)가 서쪽을 흐르는 삼각지점에 위치한 해발 526m의 산에 있다.

성벽은 혼강에 면한 급경사를 안부(鞍部)로 한 동남쪽 능선에서 서북쪽으로 경사진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쌓았으며 둘레가 2,773m이다. 가파른 절벽 그 자체로 성벽을 삼고, 완만한 지형은 대략 다듬은 돌로 성벽을 축조하였는데, 동벽의 길이 1,107m, 서벽의 길이 957m, 남벽의 길이 347m, 북벽의 길이 362m이다.

문은 북문과 서쪽벽에 2개의 문이 있고 남문이 있다. 북문은 너비가 4m쯤이지만 양쪽에 지름 14m, 높이 2m의 돈부(墩部)가 있다. 문터의 서쪽으로는 너비 1.2m, 깊이 0.4m의 배수구가 있다. 북벽의 양쪽 끝에는 지름 5.6m의 곡성(曲城)이 있어서 각루(角樓)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서벽의 문터에서 북쪽의 것은 너비 2.7m이고 역시 양쪽에 돈부가 있고, 남쪽의 것은 너비 3.6m이고 높이가 3m나 되는 토돈(土墩)모양이 남아 있다. 이들 문터에서는 산 아래로 구불구불 내려가는 길이 바라다보인다. 남벽의 길이는 가장 짧으며, 서벽과 갈라지는 부근에 남문터가 있다.

남문터는 작은 계곡을 이루며 낮아진 곳에 위치하고, 문밖으로는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의 돈부가 남아있다. 이것은 6.5m의 간격을 두고 있는데 남쪽의 것은 지름 14m이고 높이가 7.5m나 된다.

이 돈부의 뒤쪽이 문터로서 문구부(門口部)의 너비는 14m, 높이 7.5m이며, 바닥에 판석으로 깔고 측벽이 5.5m높이로 남아 있다. 지금은 한 줄기의 깊이 팬 홈으로 양쪽이 절벽을 이루고 있는 구도(溝道)가 성안으로 이어져 있으며, 남문터의 안쪽에 200m 길이의 토루가 내성(內城)을 이루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성안에는 동남쪽과 북문터 안쪽에 우물이 있고, 북쪽에는 저수지터가 있다. 부근에는 경사면의 넓은 터전에 건물터가 있다. 성안에서는 돌절구를 비롯하여 각종 그릇조각과 기와조각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한(漢)에서 고구려를 거쳐 요(遼)와 금(金)의 시기의 것도 발견되고 있다. 성의 구조는 고구려의 전형적인 석축산성의 표본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중국내의 고구려유적』(이은복·차용걸, 학연문화사, 1994)
『고구려의 고고문물』(이형구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通化市文物志』(吉林省文物志編纂會, 1986)
『吉林通化市漢代自安山城調査與考證』(柳嵐·邵春華, 博物館硏究, 19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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