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활자본. 1880년(고종 17) 후손 시호(時浩)·명환(明桓)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돈우(李敦禹)의 서문이, 권말에 후손 자안(子安)·봉국(鳳國)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3에 시·만사(挽詞) 30수, 소(疏) 1편, 서(書) 4편, 기(記) 2편, 서(序) 2편, 행장 1편, 잡저 3편, 창암강동유록(滄巖江同遊錄) 1편, 권4에 부록으로 세계도·행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청아담박하다는 평이 있다. 「한거십경(閑居十景)」·「제장암석가산(題藏巖石假山)」·「퇴휴음(退休吟)」 등은 주위의 경치에 감정을 잘 조화시켜 온화한 가운데 격렬한 감회를 일으킨다.
소의 「청금채은소(請禁採銀疏)」는 향교의 앞산에 은광을 만들어 주위의 경관을 마구 훼손함은 성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지적하여, 즉시 사실을 조사하여 채은의 중지를 명할 것을 청한 글이다.
「정남약천구만(呈南藥泉九萬)」은 암행어사 남구만에게 건의한 것으로, 평생에 5,000권의 책을 독파하여도 굶주림은 면할 길이 없다고 호소하면서 선비는 국가의 근본이니 선비들을 우선 구제, 안심하고 학업에 종사하여 국가를 위하여 경륜을 기를 수 있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잡저 중 「격몽가훈(擊蒙家訓)」은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가훈으로 남긴 것이며, 「교유팔조(敎幼八條)」는 어린이를 가르치는 데 필요한 조목을 나열한 것으로, 당시 교육의 목표를 살필 수 있게 하는 글이다.
이 밖에도 자신의 취지와 학문의 대략을 밝힌 「퇴휴재자서(退休齋自序)」와, 농촌의 사정과 학문을 연결하여 문답식으로 서술한 「어초문답(漁樵問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