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사절 또는 특파사절이라고도 한다. 이 점에 있어 1961년의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규정된 통상의 외교사절과는 구별된다.
종래 특사의 임무 및 기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 왔으나, 크게는 사무사절(事務使節)과 예의사절(禮儀使節)로 구별된다.
사무사절이라 함은 대체로 ① 타국과의 관계에 있어 일시적으로 협의, 절충하여야 할 문제가 있을 경우 파견되는 임시사절(temporary envoy), ② 국제회의 또는 외교회의에 국가를 대표하여 파견되는 대표단, ③ 미승인 국가 또는 교전단체(일국내에 내란이 발생한 경우, 중앙정부 또는 제3국 정부에 의하여 지방적 사실상의 정부(de facto local government)로서의 자격이 인정된 반도 또는 혁명군 단체를 말함)가 파견한 사절 등을 지칭한다.
예의사절(envoy ceremonial)이라 함은 군주의 대관식, 대통령취임식, 국가독립경축식전 등과 같은 의식에 즈음하여 국가대표로 파견되는 사절을 의미한다. 특사도 그 지위에 있어 상주 외교사절과 실질적으로 동등하나, 외교사절에 관한 국제법상 원칙은 주로 상주사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우리나라가 과거 중국이나 일본에 파견하였던 사신은 오늘날의 특사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개항 이후 근대적 의미의 특사로 외국에 파견된 최초의 인사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파견된 홍문관응교 김기수(金綺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는 1948년 11월 4일 중화민국 난징에 최초로 정환범(鄭桓範)이 특사로 파견되었으며, 1949년 3월부터 1951년 초까지 조병옥(趙炳玉)이 유엔에 특사로 파견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