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때 이미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던 양전법(量田法)은 결부속파법(結負束把法)이었는데, 그러한 면적 측량을 위한 기준 면적 단위가 된 것이 바로 1파, 즉 한 줌이다. 1파는 장년 농부의 손가락 굵기를 기준하여 64지(指)를 한 변의 길이로 한 정사각형이 만드는 넓이를 말한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30지의 길이는 세종주척(世宗周尺) 2척8촌으로 기록되고 있어, 1파의 넓이는 1.543㎡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1부={(19.41㎝×6.4)×10}2
=154.3㎡
1결={(19.41㎝×6.4)×100}2
=1,5431.6㎡
가 된다. 1069년(문종 23)에는 전토(田土)를 3등급으로 나누면서 옛 1결을 하등전 1결로 하고 상·중등전의 넓이는 줄였는데, 이때 양전법도 개혁하여 길이 30지척을 만들어 하등전척으로 하고 하등전척 6척을 1보(步), 사방 3보3척을 1부로 하여 양전 기준 면적을 파에서 부로 바꾸었다.
1444년(세종 26)에는 다시 전토를 6등급으로 나누면서 양전의 기준 면적을 1파로 정했는데, 1등전 1파는 주척 4척7촌7분5리를 사방 길이로 한 정사각형의 넓이가 되게 하였다.
1등전 1파=(주척4.775척)2
=(20.795㎝×4.775)2
=0. 986㎡
2등전 1파는 1.16㎡, 3등전 1파는 1.41㎡ 등으로 하였다. 그 뒤 1634년(인조 12)에는 다시
1파=(21.733㎝×4.775)2
=1.081㎡
2등전 1파는 1.272㎡, 6등전 1파는 4.324㎡로 바뀌었다. 그러나 1902년 미터법을 도입하면서부터는 1㎡는 1파, 100㎡는 1부, 1만㎡는 1결로 개혁하였다.
전토를 양전(量田)하기 위해 기준 면적을 제정할 때 1파 한 변의 길이인 64지는 길이의 단위가 되었을 것이며, 그 길이 단위명은 1파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옛 1리(里)는 300파로 정해졌을 것이므로 372.7m가 되어 이것이 훗날에는 중국 제도에 따라 중국주척 6척이 1보, 300보가 1리로 되니 후일의 1리는 374.3m로 제도가 바뀌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조선시대에는 영조척(營造尺) 5촌 길이를 양강척(量舡尺) 1척으로 하고, 양강척 10척 길이를 1파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때의 1파 길이는 1.561m였다. 이는 배의 크기를 정밀하게 측정, 검사하여 낙인(烙印)하는 데만 쓰인 길이의 단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