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호와 인구의 파악, 토지의 측량과 관리, 조세·부역·공물의 부과와 징수, 농업과 양잠의 장려, 풍흉의 조사, 진휼과 환곡의 관리를 담당하였다.
이는 회계사(會計司)·경비사(經費司)와 함께 호조의 3대 기간부서였다. 여기에는 정랑 1인, 좌랑 1인, 계사(計士 : 회계사) 6인의 전담관원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판적사의 기구와 임무는 1405년(태종 5) 육조의 관제를 재정비할 때 확정되어 조선 말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조세의 부과와 징수는 초기에는 회계사에서 담당하였으나 뒤에 판적사로 이관되었다. 1455년(세조 1)에는 판적사의 낭관(郎官) 1인이 각도의 제언관리를 감찰하기 위하여 파견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의 판적사 계사들은 이와 같은 업무 외에도 봉상시(奉常寺)·내섬시(內贍寺)·의영고(義盈庫)·양현고·선공감(繕工監)·군기시(軍器寺) 등의 속아문 회계와 충청도·황해도의 양안(量案 : 토지대장) 및 공부(貢賦 : 지방의 특산물인 공물의 稅制) 관리를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