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년통록(編年通錄)』은 김관의(金寬毅)가 여러 사람이 보관하고 있던 기록들을 모아서 편찬한 고려시대의 역사서로 현전하지 않는다.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에 따르면, 『편년통록』은 징사랑 검교군기감(徵仕郞檢校軍器監) 김관의가 지은 것을 동지추밀병부상서(同知樞密兵部尙書) 김영부(金永夫)가 가려 뽑아서 왕에게 올린 것이라고 한다. 고려왕조의 세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였으나, 김영부가 가려 뽑기 이전의 기록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이제현(李齊賢)의 『익재집(益齋集)』 가운데 『역옹패설(櫟翁稗說)』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편년통록』에는 고려 태조(太祖) 왕건의 세계(世系)에 대한 설화가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왕건의 성명에 대한 자신의 의견 등을 기술해 놓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밝히고 있는 태조의 세계는 실록(實錄)에 기록된 아버지 ‧ 할아버지 ‧ 증조할아버지와 각각의 부인 등 3대를 추존한 기사(記事)와 다르다. 왕건의 증조할아버지는 당(唐)나라의 귀성(貴姓)으로 되어 있고, 추존 기사가 없다.
또한, 국조(國祖) 원덕대왕(元德大王, 이름은 寶育)은 증조할아버지의 장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증조할머니 정화왕후(貞和王后, 이름은 辰義)를 국조대왕의 딸로 기술하였다. 이에 관해 이제현은 『왕대종족기(王代宗族記)』와 『성원록(聖源錄)』을 인용해 김관의의 설이 잘못되었음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이제현보다 조금 앞선 시기의 인물인 민지(閔漬)는 『편년강목(編年綱目)』에서 김관의의 설을 따르고 있다.
한편, 김관의의 저술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인용되어 있다. 『삼국유사』권2 김부대왕조(金傅大王條)에 인용된 김관의의 『왕대종록(王代宗錄)』에서는 태조의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 이씨(李氏)는 신라의 합주(陜州) 지방관인 이정언(李正言)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왕대종록』은 고려 왕조의 세계를 기록하여 정리한 책이라는 점에서 『편년통록』과 같은 책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이 기록은 『고려사』 「열전(列傳)」과 완전히 다르며, 『고려사』 「세가」에도 인용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왕대종록』을 『편년통록』과 동일시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편년통록』은 민간신앙과 무속을 기반으로 하는 산악신앙(山岳信仰)과 수신 숭앙(水神崇仰)을 통해 고려 왕권을 신성화하려는 의도에서 편찬되었다고 평가된다. 더불어 설화 중심에 신이(神異)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야사(野史)를 유교적인 합리주의 역사관에 의해 수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 서술된 신선사상, 풍수지리사상, 숭룡사상(崇龍思想) 등은 당시 민속사상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편년통록』은 고려시대의 전체적인 사상 지형을 배경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려는 유불선(儒佛仙)과 풍수지리, 민간신앙 등이 공존하였는데, 『편년통록』은 고려 태조 선대의 행적을 설화적인 형태로 기록함으로써 여러 사상과 종교가 공존하는 고려시대의 사상 지형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편년통록』이 편찬된 의종(毅宗)대의 정치적인 상황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종(仁宗)대를 거치며 약화된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국왕의 선대조를 신성화(神聖化)한 것으로 이해하여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