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년(태조 2) 3대를 추존할 때 시조 원덕대왕이라 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인용된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의하면 호경(虎景)의 아들이 강충(康忠)이고 그의 아들로 이제건(伊帝建)과 손호술(損乎述: 寶育)이 있는데, 손호술은 국조 원덕대왕으로 추존되었다고 한다.
출가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하고 평나산(平那山) 북갑(北岬)에 돌아와 살다가 다시 마하갑(摩訶岬)으로 이사하였다. 일찍이 곡령(鵠嶺)에 올라가 남쪽을 향하여 오줌을 누니 삼한(三韓) 산천이 은해(銀海)로 변하여 다음날 형 이제건에게 말하니 이는 임금이 될 사람을 낳으리라 하고 그 딸 덕주(德周)와 혼인시켰다 한다.
딸 둘을 낳으니 작은딸이 진의(辰義)로 당(唐)나라의 숙종(肅宗)과 동침하여 작제건(作帝建)을 낳으니 이가 왕건의 할아버지이다. 이것은 당나라의 황실과 연계함으로 왕건세계를 미화하기 위함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3대를 추존할 때 국조 원덕대왕의 비(妣)로 딸인 진의가 정화왕후(貞和王后)로 추존된 것이 의심스러워, 진의는 보육의 형 이제건의 둘째딸로서 작은아버지인 보육과의 근친혼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