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8월 미국국회의원과 그 가족으로 구성된 극동시찰단이 중국 상해(上海)를 거쳐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때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이들에게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일본의 야만성을 직접 호소하기로 하였으며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으로 하여금 이들이 통과하는 지점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한국민족이 일제식민통치에 승복하지 않고 독립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하였다.
정부의 명을 받은 오동진(吳東振) 총영장은 정예대원을 선발하여 신의주·평양·선천·서울의 4개 지점에 파견, 미국국회의원단이 담당지역을 통과할 때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에 폭탄을 투척하도록 하였다.
평양을 담당한 안경신(安敬信)·장덕진(張德震)·박태열(朴泰烈)·문일민(文一民) 등은 미국의원단의 평양통과에 맞추어 평남도청 제3부(경찰부) 건물에 폭탄을 던져 파괴하고 다시 평양부청에 투탄하였으나 불발되었다. 그 뒤 은신하던 대원들은 차례로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