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지도 ()

평안도지도
평안도지도
인문지리
문헌
평안감영에서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1872년에 제작된 지도.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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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평안감영에서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1872년에 제작된 지도. 고지도.
서지적 사항

첩(帖) 형태의 채색필사본으로 총 85장이다. 각각의 지도는 첩으로 분책된 형태이고 첩을 펼쳤을 때 지도의 크기는 작게는 49×67.6㎝에서 크게는 153×95.6㎝로 일정하지 않으나 첩장(帖粧)의 크기는 35×25㎝로 동일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소장 상태는 수리된 이후의 모습으로, 지도와 첩의 표지가 따로 분리되어 펼쳐진 상태로 배접되어 있다.

내용

평안도지도는 1872년에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1872년 군현지도』 중 평안도 부분에 해당한다. 이 지도들은 군현지도 40장과 진보지도(鎭堡地圖) 44장, 산성지도(山城地圖) 1장을 합하여 8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양(平壤), 의주(義州) 지역의 지도는 누락되었다.

「영변부지도」와 「강서현지도」의 표지에는 ‘동치(同治) 11년 4월’이라는 기록이 있고 「자산부지도」의 표지에는 ‘동치 11년 5월’, 「평양부보산진지도」의 표지에는 ‘동치 11년 6월’이라는 기록이 있어 평안도지도가 1872년 4월에서 6월에 걸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평안도지도는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지도마다 제작자가 다르고 표현양식이나 채색기법에서 편차가 크다. 지도의 내용은 읍치(邑治), 사찰, 면(面), 리(里), 동(洞), 산성, 령(領), 치(峙), 봉대(烽臺), 진(津), 포(浦), 창(倉), 장시(場市), 역(驛), 향교 등 지역에 대한 정보가 회화적 요소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각 군현에 소속되어 있는 진과 보를 별도로 그린 지도에는 산계(山系)와 수계(水系), 특히 군사·교통상으로 중요한 령(嶺)과 도로가 자세하며 창(倉), 성곽 등이 잘 표시되어 있어 군사시설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파악을 필요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1872년 평안도지도의 제작 경위를 알 수 있는 사료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1871년에 시행된 전국 읍지(邑誌)의 편찬 경위와 읍지도의 비교를 통해서 그 관련성을 살펴볼 수 있다. 평안도지도는 사실상 1871년 『관서읍지(關西邑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1872년에 평안도지도를 다시 제작하면서 지면이 확대되었으나 군현지도 중 절반이 『관서읍지』에 수록된 지도와 구도, 묘사 방식이 유사하다.

의의와 평가

평안도지도는 이전에 제작된 관찬지도와 비교하여 통일성은 결여되었지만 당시 지방사회의 실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료로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관서읍지(關西邑誌)』
『조선후기 지방지도: 충청도편』(서울대학교 규장각, 민족문화, 2005)
『읍지』14-평안도①(한국학문헌연구소, 아세아문화사, 1986)
「1872년 군현지도의 제작과 회화적 특징: 전라도지도를 중심으로」(김성희, 명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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