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남안의 낙랑구역 토성동 일대에는 낙랑군의 치소터[治址]로 추정되는 토성(土城)과 관련된 2,000여 기 이상의 덧널무덤과 벽돌무덤[塼築墳]등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낙랑리 제85호분도 그 중의 하나로서 1955년 6월 30일에 북한의 사회과학원 고고학·민속학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봉분(封墳)의 지름은 대략 10m, 높이는 약 1m이며, 무덤구덩이[墓壙]의 규모는 한변 370㎝의 정방형이다. 매장주체부인 덧널은 대략 남북 295㎝, 동서 281㎝의 규모로 각재를 이용하여 구축하였다. 이 덧널의 내부는 덧널의 남북 중심선상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설치된 격벽(隔壁)에 의하여 동서로 나누어진다.
동쪽 공간에는 남쪽으로 치우쳐 2개의 널[木棺]이 남북장축으로 나란히 안치되어 있었으며, 북쪽의 나머지 공간에는 화분모양토기 1점, 작은 항아리[小形壺]등의 토기류와 칠기 등이 부장되어 있었다. 널 내부에서는 은반지 3점, 대모제(玳瑁製)비녀·유리제장고모양 귀걸이구슬[耳璫]등이 출토되었다.
서쪽 공간은 껴묻거리[副葬品]구역으로서 칠초철검편(漆鞘鐵劍片), 동한(東漢) 후기의 청동거울인 서금경(瑞禽鏡), 장의자손연호문경(長宜子孫連弧文鏡), 동고리[銅環], 띠고리[鉸具], 회백색 독[甕]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칠기 잔편 중 채화를 그린 것과 문자를 칠서한 것들이 있는데, 채화는 수레를 탄 인물 또는 말을 달리는 인물을 중심으로 짐승들을 배치하는 형태로 그려졌다. 문자를 칠서한 것은 예서(隸書)체인데, ‘黃虎爲職(황호위직)’, ‘陽處三巷北(양처삼항북)’, ‘解作六牢作(해작육뇌작)’이라 적혀 있다.
낙랑시기의 덧널무덤은 지하에 무덤구덩이를 파고 덧널을 설치한 후 다시 널을 안치한 무덤으로 통상 방대형의 봉분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1기의 덧널을 단독으로 매장하는 홑무덤[單葬]이 많았으나 후에 2기의 무덤구덩이를 따로 파서 연결시켜 놓은 이혈합장(異穴合葬) 형식으로 변하게 된다.
껴묻거리로는 세형동검과 함께 철제무기와 공구 및 거마구(車馬具) 등이 주종을 이루고 화분모양토기와 광구단경호(廣口短頸壺)가 조합을 이루어 출토된다. 유물의 전반적인 양상에서는 고조선 이래의 토착적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합장 덧널무덤은 이 일대의 덧널무덤 중 가장 보편적인 형식으로서, 출토된 청동거울의 형식을 미루어볼 때 그 축조연대는 2세기 중엽에서 말엽에 이르는 시기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