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평양직할시 삼석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신도·산악도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개설
내용
벽화는 널방 내부에 면회를 입힌 뒤 그 위에 그렸으며 주색 · 갈색이 주종이다. 널방 벽화는 대부분 떨어져나갔으나 동벽과 북벽 일부에 남은 벽화의 흔적으로 보아 사신(四神)이 중심화제이다. 천장부에는 각종 문양과 해모양〔日象〕 · 달모양〔月象〕 및 산악을 그렸다. 널길에는 벽화가 없다.
널방 동벽의 청룡은 몸체 뒷부분과 계단식으로 꺾이며 뒤로 뻗어나간 꼬리가 희미하게 남아 있고, 빈 공간 일부에 비운문(飛雲文)의 흔적이 보인다. 북벽의 현무는 거북의 거북등무늬(귀갑문)과 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천장부의 벽화 역시 떨어져나간 부분이 많으나 남은 부분은 비교적 선명하다.
천장부 1층 평행굄에는 인동무늬(인동문(忍冬文))와 산악을, 2층에는 동서에 해모양 · 달모양과 남북에 고리무늬〔環文〕를 좌우에 거느린 연꽃무늬(연화문(蓮花文))를, 3층에는 연속인동당초무늬(인동당초문)를, 4층 삼각굄에는 인동무늬(인동문)를 장식하였다.
1층 평행굄 동북벽과 서북벽 이음새에 그려진 2폭의 산악도는 중앙에 삼산(三山)형태의 산을 그리고 능선 기슭에 암산형 산봉우리와 소나무로 보이는 수목을 배치하였다. 이 산악도는 배경으로서가 아닌 독립된 산수화의 면모를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남벽의 것은 백제 능산리 벽화분 천장의 연꽃무늬와, 북벽의 것은 신라 순흥 어숙묘 천장의 연꽃무늬와 유사하다. 이로써 고구려와 백제 · 신라 사이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와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연꽃무늬 좌우의 고리무늬는 환문총(環文塚) 및 쌍영총(雙楹塚)의 것과 같은 형태이나 컴퍼스를 이용해 보다 정확한 동심원을 긋고 있는 점에서 발전된 면모를 보인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널방의 구조와 벽화에 보이는 사신도 · 산악도와 인동당초무늬의 세련된 표현으로 보아,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전호태, 사계절, 2007)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고구려 고분벽화연구』(전호태, 사계절, 2000)
- 『고구려의 고고문물』(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 『조선유적유물도감-고구려편 2-』4(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1990)
- 『한국벽화고분』(김원룡, 일지사, 1980)
- 『高句麗の壁畵古墳』(朱榮憲, 學生社, 1972)
- 「昭和十一年度古蹟調査報告」(朝鮮總督府,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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