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역전벽화고분은 1954년평양역 앞 도로에서 하수도공사를 하다가 발견되었다. 그 해 6월 23일부터 7월 5일까지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문화유물보존위원회 등에서 조사하였다.
봉분이 사라져 무덤 외형은 알 길이 없으나 작은 돌과 벽돌로 널방〔玄室〕을 축조하였다. 절반은 지하에 묻혀 있었는데 널방의 벽은 돌을,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다.
남향인 이 무덤의 구조는 널길〔羨道〕, 앞방〔前室〕, 좌우의 감(龕), 널방, 통로, 뒷방〔後室〕으로 이루어진 쌍실묘(雙室墓)로서 ‘평양역전쌍실묘’로 불리기도 한다. 지하 1.5m 깊이의 다진 흙 위에 백회, 숯, 백회를 차례로 깐 다음 무늬없는 벽돌을 가로 세로 2겹 깔고 그 사이를 백회로 메워 널방 바닥을 조성하였다. 앞방의 크기는 동서 3.12m, 남북 2.88m, 뒷방의 크기는 동서 3.78m, 남북 3.45m이다.
앞방에서는 천장 뚜껑돌로 보이는 판돌이 발견되어 활처럼 곡선으로 휜 천장〔穹窿狀 天障〕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방 서벽 감실 좌우에는 4각 돌기둥을 세웠다. 벽화는 회벽 위에 인물풍속도 등의 내용이 그려져 있다. 앞방에는 고취악대, 말을 탄 사람, 무사 및 주방을 그렸으며, 왼쪽 감의 벽화는 지워져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그 앞의 사각 돌기둥 조각에는 머리에 수식을 한 무사가 검을 짚고 서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으로 미루어보면 본래 이 위치에는 무덤 주인의 실내생활을 묘사한 듯하다. 또한, 오른쪽 감에는 수레가 그려져 있다.
이 고분은 안악 3호분〔冬壽墓〕, 요동성총(遼東城塚), 태성리 1호분처럼 옆방이 달리고 서쪽 옆방에 무덤 주인의 초상이 그려진 벽화고분들과 같은 계통이다. 즉, 기둥벽화의 장식물, 부엌의 모습, 호위무사, 악대, 방앗간 등은 안악 3호분에 동일하게 보이는 소재들이다. 아울러 인물의 복식과 벽화의 묘사에서 선조(線條)의 백묘법(白描法)과 채색 방법도 역시 안악 3호분과 유사하다. 그러면서 딸린방의 감실이 간략화되고 널방 축조에 작은 돌과 벽돌을 사용한 점은 ‘영화 9년명 벽돌출토고분’과 비슷하다. 따라서 이 벽화고분은 안악 3호분, 영화 9년명 벽돌출토고분에 가까운 4세기 중엽경 무덤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