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사적. 동서 길이 1.2㎞, 남북 길이 500m의 토축성곽으로, 동·서·북 문지(門址)와 건물지 등이 남아 있다.
이 토성은 평양과 안학궁지(安鶴宮址)의 중간쯤에 위치하여, 넓은 평야를 두른 낮은 구릉을 따라 반달모양으로 되어 있다. 동문의 바깥은 합장강(合掌江)이 흘러 대동강에 합류되며, 북문에서 동북쪽으로 대성산성(大聖山城)의 남문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기와들은 대동강 남쪽 강가에 있는 낙랑의 옛터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늦은 시기의 것이지만, 평양성이나 안학궁지 등에서 발견되는 것들보다는 오래된 것들이다. 따라서, 낙랑군을 몰아낸 고구려가 장수왕 때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는 곳이 바로 이 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지금의 평양성은 고구려 말기에 도읍하였다는 장안성(長安城)에 해당된다고 여겨지고 있다. 즉, 장수왕 때에 도읍한 평양성이란 청암리토성과 대성산성으로 평지성과 산성이 동시에 운영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러한 성곽의 배치는 고구려 성곽의 특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의 동쪽에 치우쳐서 남북으로 기다란 낮은 대지에 있는 초석으로 보아 이곳에 큰 건물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서쪽에 고구려시대의 절터가 있는데 당(唐)나라 초기의 평지식가람(平地式伽藍)을 모방한 것으로 매우 귀중한 가람배치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곳에서 대성산성까지는 동북쪽으로 약 3.5㎞ 거리로서, 평상시에 이곳에 있다가 적이 침입하면 대성산성에 입보(入保)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