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룡리벽화고분은 평원군에서 서남쪽으로 13㎞ 떨어진 운룡리불당산 줄기의 남록에 있다. 주위에는 고구려시대의 봉토로 덮인 돌방무덤〔石室墳〕여러 기가 분포되어 있고, 또 평원 청보리와 대동 덕화리 벽화고분이 인접하여 있다. 1983년 4월에 조선중앙역사박물관과 평안남도역사박물관이 공동으로 조사하였다.
고분은 돌방무덤으로서 구조는 외방무덤〔單室墳〕이며 서남쪽으로 치우친 남향이다. 널길〔羨道〕을 갖추고 있는데 널길의 천장은 평천장이고 고분의 널방〔玄室〕천장은 4단으로 된 팔각굄천장이다.
널길의 벽길이는 동벽 384㎝, 서벽 365㎝, 북벽너비 96㎝, 남북너비 115㎝, 널길벽의 높이는 동벽 107㎝, 서벽 90㎝이고, 널길길이는 남북길이 195㎝, 너비 110㎝, 높이 149㎝이다. 널방의 벽면높이는 150㎝이고 천장까지의 높이는 240㎝에 달하며, 널방의 벽길이는 남벽 235㎝, 동벽 312㎝, 북벽 252㎝, 서벽 297㎝이고 널방 내에 설치된 널받침〔棺臺〕의 남북길이는 222㎝, 동서너비 139㎝, 널받침높이 15㎝이다.
벽화의 내용은 천장굄부분과 벽과의 인접 부분에 남아 있는데, 남쪽 천장굄의 1단 중심에 날개와 몸체, 꼬리부분의 벽화 등 일부가 남아있는 주작도(朱雀圖)이고, 남벽의 윗부분에 구획선을 긋고 그 안에 벽화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리고 천장굄석에는 검은색과 적갈색으로 그린 구름무늬〔雲文〕등이 나선(螺旋)모양의 문양과 둥근모양의 문양 등이 혼합되어 그려져 있다. 유물로는 널못〔棺釘〕16점, 문손잡이고리·은장도·은장도편 등이 출토되었다.
고구려고분은 모두 3단계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친다. 먼저 압록강 중·하류와 혼강 본·지류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된 서기전 3∼2세기경부터 서기 3세기대까지는 돌덧널무덤〔石槨墓〕과 돌덧널을 가진 돌무지무덤〔積石塚〕이 중심이 되는 시기이다. 다음으로 4∼5세기에 돌방과 봉토분구, 벽화라는 새로운 요소가 돌무지무덤과 공존, 결합하면서 돌무지무덤과 봉토분, 생활풍속도가 어우러진 벽화고분이 병존하게 되고 무덤의 분포범위가 확대되는 한편 규모가 월등히 크고 배타적 묘역시설을 가진 초대형 무덤이 등장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6세기대에 고분의 중심이 돌무지무덤에서 봉토분으로 변화한다. 봉토분 가운데 최상위 무덤은 사신도가 그려진 벽화고분이 된다.
이러한 고구려고분의 변천과정으로 미루어볼 때, 운룡리벽화고분은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인 6∼7세기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