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로 길게 뻗은 150m 되는 산 아래 경사면에 장축 남북방향으로 길이 약 80m, 너비 50m에 청자편(靑瓷片)·갑발편(匣鉢片) 들이 쌓여 있다. 1959년 6월부터 7월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10×17㎝ 크기의 장방형벽돌로 정연하게 쌓은 등요(登窯)로 확인되었다.
너비 95㎝, 총 가마길이 44m이며, 측벽에는 60∼70㎝ 간격의 출입구가 17개소나 있고, 가마의 천장은 궁륭형의 터널모양이다. 출토유물은 원통형(圓筒形)의 갑발(匣鉢)과 갑발받침, 그리고 화분형의 갑발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갑발의 높이는 12㎝, 지름은 20∼30㎝였다. 가마벽돌은 회흑색(灰黑色)의 10×17㎝ 크기의 장방형벽돌과 한 변이 11㎝ 되는 정방형의 벽돌이 출토되었다.
청자는 녹청색(綠靑色)·녹갈색(綠褐色)·담청색(淡靑色)의 것으로서, 완(盌)·대접·접시·발(鉢)·유병(油甁)·주전자·항(缸) 등이 출토되었다. 문양은 없고, 내화토(耐火土) 받침으로 얇게 받쳐 구운 흔적이 있으며 토기편도 출토되었다.
가마의 제작시기는 충청남도 서산 오사리요지(梧沙里窯址), 경기도 고양 원흥리요지(元興里窯址), 용인 서리요지(西里窯址)의 최고층(最古層)에서 출토되는 갑발·벽돌·청자완(靑瓷盌)·접시편과 같은 것으로, 고려시대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초기 청자요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