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로 길게 뻗은 150m 되는 산 아래 경사면에 장축 남북방향으로 길이 약 80m, 너비 50m에 청자편(靑瓷片) · 갑발편(匣鉢片) 들이 쌓여 있다. 1959년 6월부터 7월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10×17㎝ 크기의 장방형벽돌로 정연하게 쌓은 등요(登窯)로 확인되었다. 1991년에 다시 발굴하여 2호부터 5호 가마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제1호 가마는 너비 약 95㎝, 총 길이 44m이며, 측벽에는 60∼70㎝ 간격의 출입구가 17개소나 있고, 가마의 천장은 궁륭형의 터널모양이다. 출토유물은 원통형(圓筒形)의 갑발(匣鉢)과 갑발받침, 그리고 화분형의 갑발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갑발의 높이는 12㎝, 지름은 20∼30㎝였다. 가마벽돌은 회흑색(灰黑色)의 10×17㎝ 크기의 장방형벽돌과 한 변이 11㎝ 되는 정방형의 벽돌이 출토되었다.
청자는 녹청색(綠靑色) · 녹갈색(綠褐色) · 담청색(淡靑色)의 것으로서, 완(盌) · 대접 · 접시 · 발(鉢) · 유병(油甁) · 주전자 · 항(缸) 등이 출토되었다. 문양은 없고, 내화토(耐火土) 받침으로 얇게 받쳐 구운 흔적이 있으며 토기편도 출토되었다.
가마의 제작시기는 충청남도 서산 오사리요지(梧沙里窯址), 경기도 고양 원흥리요지(元興里窯址), 용인 서리요지(西里窯址)의 최고층(最古層)에서 출토되는 갑발 · 벽돌 · 청자완(靑瓷盌) · 접시편과 같은 것으로, 고려시대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초기 청자요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