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에 황권(皇權)호위를 위한 시위대(侍衛隊) 1개 대대가 편제되고, 이듬해 시위연대로 확충 개편되면서 그 해 7월 신식 화기부대인 포병 1개 중대가 시위연대에 설치, 배속되었다.
신설된 포병중대는 병력을 보병 가운데에서 선발하였으며, 회선포(回旋砲)·극로백포(克魯佰砲)를 전관하게 하고, 포병을 총관하는 참령(參領) 1인은 군부(軍部) 포공국(砲工局)의 포병과장이 겸하였다.
포병중대의 구성은 정위(正尉)로 임명되는 중대장 1인, 부위(副尉)·참위(參尉)로 임명되는 소대장 4인, 하사관 15인, 그리고 병졸 185인으로 되었다. 그 뒤 포병중대는 시위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1900년 12월에 시위포병 2개 대대로 증편되었다.
이때 1개 대대는 산포(山砲) 2개 중대, 야포(野砲) 1개 중대 등 3개 중대로 편제되었으며, 그 병원은 대대본부에 대대장인 참령 1인, 부관 1인 등 모두 10인이 있고, 산포 1개 중대는 정위로 임명되는 중대장을 비롯, 장교·하사관·병졸 등 모두 111인으로 편제되었으며, 야포 1개 중대는 95인으로 편성되어 전투력이 대폭 증강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제가 1905년 4월 군대를 대폭 감축하였는데, 이때 포병 2개 대대도 독립 1개 중대로 축소되었다가 1907년 군대해산으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