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64년(고종 1) 1월 16일 황해도 풍천부에서 일어난 민란.
개설
경과
이에 수교(首校) 안원봉(安元鳳)은 관노비를 소집하여 부민들을 독하게 구타하였다. 이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황기정이 주도하여, 윤장언은 발통하고 조여익 · 조양록 등이 회합하고 관아에 난입하여 부사를 꾸짖고, 서리들의 집 4, 5호를 파괴하였다.
결과
한편, 감사 서형순은 난민과 이교배들을 감영으로 불러들여 문화현령 김온순(金薀淳), 강령현감 신석희(申奭熙) 등과 함께 조사하였다.
조정에서는 감사의 사건 조사보고에 따라 간사하고 교활한 서리 박인희(朴麟熙), 읍인 노기주(盧基周) 등과 난을 도모한 황기정 · 윤장언 등 4명을 섬으로 귀향보내고, 간민 오덕의(吳德宜) · 김낙기(金洛基) · 오달선(吳達善) · 여석규(呂錫圭) 등 4명을 먼곳으로 귀향을 보냈다.
그리고 난민 조양록 · 조여익과 색리(色吏) 이익주(李益周) 등 3명도 귀양을 보냈으며, 또한 부민을 독타하여 민란을 유발시킨 수교 윤재첨(尹在瞻)과 안원봉을 귀양보냈고, 책객 송지감은 1864년 8월 황해감영으로 압송하였다가, 원악도(遠惡島)로 귀양보냄으로써 난은 일단락되었다.
의의와 평가
그런데 민란에서 구체적인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난민들의 목표와 주장이 점차 뚜렷해져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민란이 점차 계획적이며 조직적인 형태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일성록(日省錄)』
- 「1860년대(年代)의 민란(民亂)에 관한 연구(硏究)」(최진옥, 『전통시대(傳統時代)의 민중운동(民衆運動)』 하, 풀빛, 1981)
- 「고종조(高宗朝)의 민란연구(民亂硏究)」(박광성, 『인천교육대학논문집(仁川敎育大學論文集)』 14,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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