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덕

  • 언론·출판
  • 인물
  • 현대
일제강점기 『사회법칙』, 『사회학입문』 등을 저술한 학자. 사회학자, 언론인.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5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7년
  • 출생지전라북도 익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유원 (국제대학, 언론학)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사회법칙』, 『사회학입문』 등을 저술한 학자. 사회학자, 언론인.

내용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출신. 1913년 전주 신흥학교를 거쳐 1915년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 미국에 건너가 1925년 하버드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1928년 학위논문 「사회법칙(Social Laws)」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조교로 있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하버드대학의 정규과정을 졸업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귀국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사회조사위원회 총무를 지낸 다음, 1931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문과과장)로 재임하는 한편, 흥사단에 가입, 독립운동에 힘썼다.

1945년 8·15광복 후에 『코리아 타임즈(The Korea Times)』를 창간, 사장에 취임한 것이 언론계에 투신한 시초였다. 이어 합동통신사 사장, 서울신문사 사장을 지내고 월간 종합지 『신천지』를 창간하였다.

1945년 11월 10일 아놀드(Arnold,A.V.) 군정장관이 재산조사를 이유로 『매일신보』에 대하여 정간명령을 내린 뒤, 미8군사령관 하지(Hodge,J.R.) 중장에 의하여 『매일신보』의 재산관리인으로 임명된 것이 『서울신문』 창간에 관여하게 된 첫 계기를 이루었다.

먼저 매일신보 자치위원회와 타협하여 오세창(吳世昌)을 초대 사장으로 추대한다는 조건 아래 『매일신보』를 정식 인수, 새로운 신문을 창간하기 위한 인선에 착수하였다.

자신은 부사장 자리에 머무르고 오세창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서울신문』 창간 간부의 진용을 짬으로써 새로운 신문을 탄생시키는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1949년 서울신문사 사장을 그만둘 때 좌익 누명을 쓰기도 하였다. 6·25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하여 서울에 묶여 있을 때 북한의 끈질긴 회유에 불응하였다.

9·28수복 직후 병으로 건강이 나빠졌는데, 미국무성의 특별촉탁으로 임명되어 일본 주재 연합군총사령부에서 근무하였다.

이에 앞서 1947년 과도정부 입법의원에 당선, 이듬해 인도에서 개최된 범아문화회의(汎亞文化會議)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그 뒤 국제문화협회장 · 한미문화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사회법칙』 · 『사회학입문』 등이 있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