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1책. 필사본. 문집을 만들기 위한 미정리 원고다. 따라서 서(序)·발(跋) 및 목차 등은 없으며, 간행 경위도 알 수 없다.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대동야승』에도 번역과 함께 그 원문이 실려 있다.
광해군과 인조 때의 여러 역사적 사실을 서술한 것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또 그 당시의 사회적인 사건의 내용을 싣고 있다. 뒤에는 『자해필담(紫海筆談)』과 천연두 예방법인 『두진방(痘疹方)』도 함께 수록되었다. 후세에 각각의 내용에 따라 제목을 추서(追書)해 놓았다.
이 가운데 「남북론(南北論)」은 1591년(선조 24)의 기록으로, 남인과 북인으로 당론이 나뉘게 된 경위와 함께 급격한 자는 북인으로, 느긋한 자는 남인으로 이르게 됨을 적고 있다. 1599년의 기록인 「대소북(大小北)」은 남이공(南以恭)과 김신국(金藎國)이 홍여순(洪汝諄)을 탄핵하자 북인이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나뉘게 된 경위를 설명한 것이다. 당쟁이 심하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서맥(瑞麥)」은 집 앞 보리밭의 보리이삭을 보고 적은 글로, 서맥은 한 대에 여러 이삭이 나오는 것을 의미하며, 태평성대에 서맥이 생긴다는 송나라 진종(眞宗)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전란 중이던 1598년 저자가 제천에 있을 때 집 앞 보리밭에 서맥이 많이 생겼는데, 이 해 가을 도요토미(豊臣秀吉)가 죽고 왜적이 다 돌아가 다시 평정을 되찾았으니, 서맥송(瑞麥頌)을 지어도 마땅하리라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병자호란」은 오랑캐의 장수 용골대(龍骨大)가 도망간 후 다시 올 것에 대비해 김자점(金自點)을 보내어 방어하게 한 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내용과, 김자점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형편이 어려워지자, 민성휘(閔聖徽)가 이러한 일을 이미 예견한 저자의 선견지명을 예찬해 보낸 편지를 실은 글이다. 그밖에 「상촌집(象村集)」은 신흠(申欽)의 문집을 간행하여 배포하게 된 경위를 적은 것인데, 1631(인조 9) 처음 간행된 뒤 1636년에 중간되면서 잡록에 신흠이 기록하지 않은 글들이 다수 수록되었다는 견해를 담고 있다.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자해필담』은 당시의 사회와 정치인·현인·악인(惡人) 등에 대한 충격적이며 비범한 기담이사(奇譚異事)들을 채록한 것이다. 이색(李穡)·윤원형(尹元衡)·김시민(金時敏) 등의 이름과 임진왜란·정유재란 등의 기록이 보인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은 기이한 것으로 정사(正史)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이 문집은 조선 중기의 다사다난하고 변화가 심했던 국가의 이면사를 엄정하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