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시대에 현 경기도 팽택시 팽성읍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개설
내용
『고려사』에는 정종(靖宗) 때(1034~1046) 전국 각 조창에 배치할 조운선의 숫자를 정하면서, 하양창에는 1척 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哨馬船) 6척을 두었다고 한다. 하양창에 모인 세곡은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되었다. 하양창을 비롯한 13조창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조창을 드나드는 세곡의 보관 및 운송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했을 것이며, 13조창에는 판관(判官)이 임명되어 각 조창에서의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다. 인종 때(1122~1146) 개정된 외관(外官)의 녹봉 규정에 따르면, 13창의 판관에게는 20석의 녹봉이 지급되었다.
변천과 현황
고려 후기에 하양창은 경양현으로 승격하고 현령(縣令)이 파견될 만큼 중요시되었다. 그리고 경양현령은 염장관(鹽場官)을 겸임하였다. 하양창의 경양현으로의 승격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특수 행정구역의 군현 승격이 증가하는 14세기 중반 전후로 추측된다. 그러나 경양현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6년(태조 5)에 혁파되고 직산에 소속되어 경양포라고 불리게 된다. 이때부터 옛 하양창이 있던 경양현 지역은 1906년까지 직산의 월경지(越境地)로 존속하다가 평택으로 이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문경호, 혜안, 2014)
-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한정훈, 혜안, 2013)
- 『한국사: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14(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3)
- 「15·16세기 조창제(漕倉制)의 재정립과 그 이해방향」(한정훈, 『역사와 경계』 94, 경남사학회, 2015)
- 「여말선초 조운제도의 연속과 변화」(문경호, 『지방사와 지방문화』 17-1, 역사문화학회, 2014)
- 「조선 건국기 조운체제의 정비와 그 의미」(한정훈, 『진단학보』 120, 진단학보, 2014)
- 「고려~조선전기 조창(漕倉)의 분포와 입지」(정요근, 『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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