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호국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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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호국단 발대식
학도호국단 발대식
제도
학생층의 유기적인 조직으로서 사상통일과 단체적 훈련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던 학생자치훈련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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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학생층의 유기적인 조직으로서 사상통일과 단체적 훈련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던 학생자치훈련단체.
내용

1949년 9월에 결성, 발족하여 중앙학도호국단 산하에 시·도 및 각 대학 학도호국단이 설립되었고, 중등학교 이상의 각급학교에 학생과 교직원을 단원으로 한 전국적 규모의 조직으로 출발하였다. 문교부는 학도호국단 조직을 위하여 1948년 12월부터 각 중등학교의 학생간부 2,400여 명을 선발하여, 중앙학도훈련소에 입소시켜 단기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또 각급학교 학도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지도할 교관이 없었다. 이에 전국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체육교사 387명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시켜 군사에 관한 지식과 훈련을 받게 한 뒤, 육군소위로 임명하여 당해학교에 배속하였다.

이어 1949년 1월 <학도호국단조직요령>을 공포하여 중등학교는 2월 중에, 대학은 3∼4월 중에 그 결성을 완료하였다. 이와 동시에 문교부내에 학도호국단사무국이 설치되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학도호국단규정>이 공포되었다. 학도호국단은 중앙 및 지방별로 조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중등학교 이상의 각급학교(대학 포함) 학생과 교직원을 단원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그것은 반공사상교육을 실시하며 조직적 활동을 통하여 투철한 민족의식과 국가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지도사항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첫째, 연구 수양에 관한 것으로 ① 시국에 관한 강화강연회, ② 국내외정세에 관한 연구발표, ③ 행동비판·자기반성에 관한 회, ④ 선철·민족적 위인에 관한 연구발표, ⑤ 학술·예능·특기에 관한 연구발표 등이 있다.

둘째, 단련에 관한 것으로 ① 체조·교련·경기 등 체력단련에 관한 모든 행사, ② 행군·내한(耐寒)·내서(耐暑)·해양·산악훈련, ③ 방화훈련·모의훈련, ④ 학원·향토방위훈련 등이 있다. 셋째, 단체작업에 관한 것으로 ① 근로작업, ② 봉사작업, ③ 사육(飼育)·청소·수리작업, ④ 기관지의 발행 등이 있다.

학도호국단의 조직을 보면 한국의 교육이 그 초창기부터 남북대결의 역사 속에서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실을 역력히 살필 수 있다. 그러다가 1960년 4·19혁명의 성공으로 학생들간에는 학생자치활동의 새로운 전기(轉機)를 찾으려고 이의 해체를 강경히 주장하고 나섰다. 이러한 학생들의 여론에 따라 1960년 5월 3일 허정(許政)과도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학도호국단을 정식으로 해체할 것을 의결하였다.

이에 정부는 5월에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학도호국단규정 폐지에 관한 건>을 공포하여, 학도호국단은 창단 이래 10년 7개월 만에 해산하게 되었다. 학도호국단이 해체됨에 따라, 문교부는 10명의 학도호국단청산위원을 위촉하여 청산사무를 추진하였는데, 이에 따르는 조처로 학생자치활동 선도책을 관하 각급 기관장에게 시달하고, 각급학교장 책임하에 학생자치활동 선도에 유감이 없도록 조처하였다.

특히 중등학교에 대해서는 <교육과정시간배당기준령>에 의거하여 특별활동과정을 철저히 이행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학생자치활동에 필요한 경비의 출납에 대해서도 상세히 지시하여 자치회비는 종전의 학도호국단비액의 한도내에서 지출하도록 하였다. 학생의 활동은 자치적인 조직에 맡기되 학교장의 승인을 얻도록 하였다.

대학에서는 학도호국단이 해체된 지 며칠 되지 않은 1960년 5월 13일 우선 서울시내 각 대학(교) 학생처·과장회의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학생자치제의 명칭을 놓고 토론한 결과, 그 명칭을 학생회로 통일시켰다. 그리하여 각 대학(교)에서는 자치적으로 학생회를 조직하고 새로 만들어진 학생자치기구의 명칭을 ‘○○대학(교)학생회’라고 하였다.

학생자치기구의 조직을 보면, 집행기구인 학생회와 결의기구인 대의원회가 있고, 학생회는 학생회장 1명, 부회장 2명, 그 아래 집행부서로 구성되었다. 학생회장 선출방법 역시 종래의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었으며, 대의원은 선출방식이 각 대학(교)마다 달랐으나 대체로 각 과 대표로 구성하였다.

그 뒤 1975년 5월에 문교부에서 전국 98개 대학 총학장회의를 개최하여, 고등학교 이상의 학생과 교원으로 구성되는 학도호국단창설계획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9월에 전국중앙학도호국단 발단식을 가짐으로써 재발족되었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폐지되고 학생회가 부활되었다.

참고문헌

『한국교육사』(박상만, 대한교육연합회, 1959)
『한국인의 교육사상』(손인수, 교단사, 1969)
『문교사』(중앙대학교부설 한국교육문제연구소,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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